
빈 가마에 염소가 탔다. 유능한 호위의 진짜 초대는 잔치가 끝나기 전에.

사라지는 데 익숙한 사절이 처음 묻는다. 일이 끝나도 찾아가도 될까.

안개 앞에선 기다리는 선장. 항해가 끝난 뒤 내 취향이 궁금하단다.

무대에선 누구에게나 다정한 검무가. 시작 전의 맨얼굴은 내게 보여 준다.

산을 지키는 호랑이 요괴가 작은 고양이에겐 졌다. 오늘은 그냥 채운으로.

처음 쉬는 저승사자의 병아리 연. 다음에 보자는 말부터 새로 배운다.

귀도 꼬리도 숨기지 않는 축제. 당당한 여우 요괴의 옆자리는 자유롭다.

열두 번째 결혼기념일. 왕관을 내려놓은 여왕이 우리의 내일을 묻는다.

제멋대로인 왕자인 줄 알았는데, 거절할 일은 자기 목소리로 말한다.

가짜 약혼 마지막 날. 반지 대신 두 장의 점심 초대가 남았다.

왕관보다 먼저 건넨 따뜻한 빵. 왕자의 결정 옆에는 내 의견이 있다.

혼인 일주일. 세 성채를 지킨 영주가 배우자의 디저트 취향 앞에서 웃는다.

저주가 먼저 말해 버렸다. 세련된 해주사는 이번엔 진심을 거두지 않는다.

돌풍을 막는 방패 전사. 바람이 멎으면 저녁 약속부터 하고 싶단다.

늘 모두를 돌보던 치유사의 휴가. 오늘 부탁은 같이 놀아 달라는 것.

영웅의 박수보다 귀환 뒤 저녁. 내 몫까지 챙기는 길드의 짐꾼.

틀려도 취소하지 않을 약속. 초보 공연자는 끝나고 내 얼굴을 보고 싶다.

전직 레슬러의 첫 발레. 가장 큰 사람이 가장 섬세한 인사를 배운다.

온라인 길드장에게 현실의 지휘권을 넘겼더니, 우리 둘 다 웃기 시작했다.

연애 칼럼은 잘 쓰는데 내 앞에선 퇴고 중. 1년 반째의 진짜 대화.

대표님이 내 앞에선 신입. 종이봉투 하나가 당당한 그녀를 웃게 한다.

악역 얼굴에 분홍 토끼 탈. 웃기려던 게 아닌데 내 앞에서만 무너진다.

덩치는 큰데 귀신은 무섭다. 그래도 같이 놀자는 말은 취소 못 한대.

여섯 번째 봄 소풍. 도시락은 탔어도 오래된 연인의 장난은 살아 있다.

가을 캠핑장에서 만난 전 연인. 예전처럼 대신, 지금 어떤지 묻는다.

여름이 끝나는 해변. 안전요원이 근무 대신 내 이름에 대답한다.

폭설에 취소된 생일 여행. 결혼 3년 차 남편은 오늘도 내 편을 든다.

비 오는 날엔 우산을 고치고, 맑은 날엔 함께 걸을 사람을 찾는다.

마감 시간의 제빵사. 오늘 제일 잘 구운 건 숨기지 않는 사람.

취향은 안 맞는데 대화는 잘 맞는다. 시크한 레코드숍 주인과 한 곡씩.

신발은 다 고쳤는데 비가 온다. 말수 적은 구두장이의 쉬어 갈 자리.

책방 문이 닫히기 십 분 전. 내 감상을 더 듣고 싶다는 주인.

일정표를 잊은 가이드. 오늘은 나와 같이 길을 고르고 싶단다.

야간 열차에서 굴러온 귤 하나. 여행 작가의 기록 밖 이야기가 열린다.

해안길마다 마주치던 여행자. 이번엔 우연 다음의 한 구간을 고른다.

별이 없는 전망대. 기다릴 줄 아는 그녀는 대화부터 켠다.

마지막 배가 끊겼다. 일정표를 접은 남자의 저녁이 이제 시작된다.

멀리 사는 줄 알았던 목소리 친구. 알고 보니 같은 빵집의 단골.

익숙한 목소리, 처음 부르는 이름. 익명 친구의 오늘을 듣는다.

온라인에서 날 웃기던 작가가, 첫 만남에 토스트 카드를 들고 섰다.

댓글에선 날카롭던 요리 친구가, 내 달걀말이도 끝까지 기다린다.

온라인에선 누구보다 대담한 길드 친구. 현실의 첫 작전은 같이 커피.

마지막 박자가 멎었다. 춤을 가르치던 사람이 내 걸음 옆으로 온다.

비 온다던 기상캐스터가 우산을 놓쳤다. 오늘 예보는 합석부터.

트릭을 잘 아는 마술사. 내 앞에서는 실수까지 숨기지 않는다.

무대를 뒤집던 드러머가 사탕 하나에 졌다. 오늘은 내가 웃길 차례.

왕의 대사가 끝난 뒤, 그는 내 감상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 된다.

매번 같은 건조기를 기다리던 사람과, 오늘은 웃음이 먼저 섞였다.

반듯한 옆집 남자가 내놓은 삐뚤어진 컵. 완벽하지 않아 더 궁금하다.

토마토가 먼저 넘어온 옆집. 나는 이제 주인의 웃음이 궁금하다.

내 하루가 시작될 때 퇴근하는 이웃. 같은 식탁에 시계가 둘이다.

옆집의 스무 분짜리 피아노. 오늘은 연주자에게서 초인종이 울렸다.

우승 전에 케이크부터 샀다. 이번엔 나와 같이 이기고 싶다는 사람.

서로 안 비키던 솔로 둘. 눈을 맞추고 처음 같은 숨을 고른다.

체스 시계가 멈췄다. 그가 처음 궁금해한 건 내 다음 수가 아니다.

맛없는 친절은 싫다던 라이벌이, 내 소스는 끝까지 맛본다.

이기러 왔는데 한편이 됐다. 내 답을 가장 먼저 기다리는 라이벌.

모의 데이트 세 번. 작가가 메모장을 닫으면 누구 이야기가 시작될까.

하루만 연인인 척. 의자 서른 개 앞에서 먼저 풀린 건 그의 넥타이.

가짜 연인의 조건을 정하러 갔다가, 꽃집의 진짜 취향을 알았다.